세상에 없는 것 세가지
매일경제 2024-03-21 이정희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회장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많지만 없는 것도 적지 않다. 문제는 없는 것들이 보다 중요한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없는 것'을 적절히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다루는 태도가 필요하다.
세상에 없는 것으로 보통 세 가지를 든다. 무엇일까? '정답'과 '공짜'와 '비밀'이 그것이다. 농담 같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선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
자연과학 분야는 정답이 있다. 그러나 고도의 논리와 추론이 요구되는 물리학이나 수학의 세계에서도 불변의 공식이나 진리는 존재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는 걸 보면 이 역시 절대명제는 아닐지 모른다. 하물며 인문사회과학 영역은 어떻겠는가? 세상사에 한 가지 길만 있는가? 특정 대안만 해결책인가? 어제의 정답이 오늘도 유효한가? 그렇지 않다. 세계는 끊임없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과거의 성공 경험이 실패로 귀결되는 경우도 많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식의 접근은 반동적 퇴행으로 귀결되기 쉽다. 열린 마음과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 자신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마음과 자신의 판단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신의 의견만 정답이라는 단견은 편견과 배제의 논리로 이어져 공동체의 미래를 해치기 쉽다. 타인의 존재와 다른 의견을 수용하고 숙고하는 자세, 거기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다음 단계의 대화를 추구하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외관에 불과하고 과거의 것과 다른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려면 다른 안목, 과정과 기준, 그리고 상상력이 필요하다. 기존의 정답이 존재한다고, 과거에 이런 방식으로 성공했다고 고집을 부리고 변화된 상황과 변수를 고려하지 않는 완고한 태도를 고수한다면 새로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공짜가 없다
'공짜가 없다'는 금언은 흔히 듣는 말이다. 자립정신과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는 말인 듯하다.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는 관계는 정상적인 관계로 보기 어려우며, 상하 관계에 가깝다. 현대는 수평적 협력 관계가 기본 원리이다. 합리적 역할 분담 체제에 의해 개인, 계층, 지역과 부문이 각자 역할을 수행하고, 상호 간에 합리적 균형이 이루어질 때 사회는 미래로 향하고 다수가 행복을 구가할 수 있다. 균형과 연결을 통한 상호 인정과 배려가 관건이다.
비밀이 없다
마지막으로 비밀이다.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정도(正道)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술수로 단기적 성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모르나 머지않아 그 배경과 경과가 백일하에 드러난다. 양심과 상식, 중장기적 전망에 의거한 공동체적 고민과 숙고, 그리고 진정성 있는 실천에 나설 때 우리가 희망하는 미래는 다가온다.
세상에는 세 가지가 없다. 정답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고, 공짜 의식은 모래성에 불과하며, 불의한 비밀에 기대면 당사자와 공동체가 함께 무너진다. 인간 세계의 자명한 원칙 앞에 엄중함을 느낀다.